3월1일(수)
제89주년 삼일절 기념식
김해시 무게동 용두산 삼일기념탑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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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장유의 삼일독립운동과 기념탑 소개"
한국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기점이요 민족사의 지침인 삼일운동은 기미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도었고, 3월 30일 김해면에서 배동석 등이 주도하여 벌인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1일에 하계면 진영리, 10일 명지면 중리, 11일 지목리 4월 12일 장유면 무계리, 13일 하계면 진영리와 가락면 봉림리,16일 김해면 이동리 7개소에서 10회의 만세시위가 있었다.
특히 장유면에서 일어난 시위는 가장 조직적이었고 대규모였으며, 사상자가 발생할 만큼 격렬하였다.
장유사람 김종훤은 오산학교 출신으로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가 한 후 고향에서의 만세시위를 조직한다. 장유면의 명망가 김승태를 총책임자로 추대하였고, 이강석, 김용주, 조용우, 조항래, 최현호 등 1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들은 4월 11일 범동포 이학도 주막에 모여 거사 일시를 4월 12일 정오 무계시장의 대청천변으로 정하고 각자 거주 동리별로 군중동원을 분담하기는 한편, 범동포 갈대밭 속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 리 대표에게 배부하였다.
무계장날인 12일 정오, 각지에서 동원된 군중이 3천 명(매일신보에는 3천 명, 경찰보고에는 2천 명)에 달하였다. 대청천 언덕에저 김승태, 김종훤의 사회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군중들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무계시장을 행진하였다. 이 때 성난 군중들이 헌병주재소를 포위하는 과정에 충돌이 일어나고 일본 헌병이 발사한 총에 맞아 손명조, 김선이, 김선오 세 분은 그 자리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이에 흥분한 군중들이 주재소를 파괴하고 일병들을 구타하였는데, 당일 저녁 뒤듲게 증파된 헌병들에 의해 주동인물들이 검거되고 시위는 진압되었다.
이후 1967년 김해 최대의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장유면민들의 뜻으로 삼일독립운동기념탑을 장유 내덕동 소재 용두산에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출전: 2013년 출간 장유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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